家族/우리집

양주시 회암사지 , 광능 수목원

울트라캡숀 2017. 4. 17. 13:55

작은 딸 가족을 제외하고 모처럼 모두 모여 집 근처의 양주 회암사지를 둘러보았습니다.

(다음백과 펌)

사적 제128호.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보우선사의 원증국사탑비(圓證國師塔碑)에 의해 1313년(충숙왕 즉위) 이전에 이미 절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. 1326년 고려에 온 인도 승려 지공(指空)이 천력연간(1328~29)에 회암사의 절터를 측량했다는 기록으로 인해 지공이 창건했다고도 한다.

1376년(우왕 2)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삼산양수지기(三山兩水之記)의 비기에서 이곳은 인도의 나란타사(羅爛陀寺)와 지형이 같으므로 가람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흥한다고 하여 이 절을 중창했다. 한편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퇴위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.

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은 대가람이었으며, 1424년(세종 6)에 행해진 선교양종(禪敎兩宗) 폐합 때의 기록으로도 그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. 1472년(성종 3) 세조비인 정희왕후(貞熹王后)의 명으로 정현조(鄭顯祖)가 중창했고,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(文定王后)의 비호로 다시 전국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. 왕후가 죽은 뒤 유생들의 탄핵으로 보우가 처형되고 절도 황폐해졌다. 선조 때까지는 기록에 간간이 절의 이름이 보이지만 1818년 재건한 무학대사비에는 폐사되었다고 하므로 선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. 현재 옛 절터 부근에는 1977년 중건한 대웅전·삼성각·영성각(影聖閣) 등이 있다.

절터에는 중요문화재로 회암사지선각왕사비(보물 제387호)·회암사지부도(보물 제388호), 회암사지쌍사자석등(보물 제389호),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(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),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(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), 무학대사비(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), 회암사지부도탑(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) 등이 남아 있다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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